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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스만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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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캘러핸 정권 말기인 1992년 3월 대통령실과 [[NIA]]에 의해 브루투스라는 작전명으로 계획되었다. 콜마르에 거주하던 약 1,500여 명의 고랜드 망명자들을 모아 부대를 창설해 명칭을 '''"2506여단(Brigade 2506)"'''이라고 짓고 친루이나 정권이 있었던 빌베른 모처에 위치한 비밀 캠프에서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다만 그 해 5월에 발생한 E-3격추사건으로 인해 캘러핸은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브루투스 작전에 대한 실행 의욕을 잃었다. 때문에 당시 국무총리였던 닉슨이 작전을 진행하였으나 이미 임기 말이 다가와 작전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캘러핸 정부가 끝나고 신임 대통령으로 존 F. 캘러핸이 당선되며 훈련 중이던 1,500여 명의 게릴라는 그대로 작살 나는가 싶었으나 이 작전은 NIA뿐만 아니라 국무부와 국방부까지 개입되었다. 지금까지 쓴 비용과 끌어모은 전력을 이대로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페어팩스는 외교적 위험 부담이 큰 이 작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노회한 인상의 전임 대통령 캘러핸에 비해 무언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애송이 같다는 평가[* 페어팩스는 2차 랜드대전을 참전해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훈장도 받은 인물이지만 바로 전임인 캘러핸은 원수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라는 직위에 있었던 인물인지라 그에 비하면 애송이나 다름없었기에 국내로나 대외적으로나 냉전시기 지도자로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한 방이 필요했다.]를 단번에 떨칠 정도의 탁월한 업적을 쌓아 올리고 싶었던 페어팩스는 고랜드에 침공군이 상륙하면 고랜드 국내의 호응이 있을 것이란 NIA의 호언장담만 믿고 작전을 승인했다. 사실 배경은 또 하나 더 있다. 카우스만 침공이 1961년 4월에 시작되었는데 그 해 3월에는 군부에서 더 정신 나간 작전인 [[노스우즈 작전]]을 올린 것이다. 페어팩스 입장에서는 노스우즈 작전보다는 차라리 카우스만 침공 쪽이 훨씬 제정신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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